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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nds

2019-04-05

SPECIAL : 아티스트가 머무는 공간 09

09. 담배연기 자욱한, 기욤 카시마

Original Author 핀즐 진준화 대표(www.pinzle.net)

Adapter&Editor ONDA 소모라 매니저

먼슬리 아트웍 핀즐
웹사이트 :
www.pinzle.net

핀즐은 국내 유일의 그림 정기구독 서비스로,매월 한 명의 아티스트와 작품을 선정하여 세상에 소개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아티스트의 삶과 공간은 어떤 모습일지, 공간을 일구어 가는 많은 분들께 영감을 드리고자 본 콘텐츠를 만들었습니다.

연재하는 내용 및 그림 정기구독 서비스 관련 문의는 카카오톡 플러스친구 ‘핀즐’로 주시면 신속하게 응답하겠습니다.

 

Dont_Touch_My_Hair.jpg

 

 

존재 자체만으로도 묘한 환상을 갖게 하는 공간이 있다. 때로는 사색에 잠기게 하고 때로는 감탄을 자아내는 작품들이 탄생하는 곳. 공방, 아틀리에, 스튜디오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곳, 바로 예술가의 공간. 그곳에서라면 왠지 시간도 느리게 흐를 것만 같고 사소한 순간조차 영감이 될 것 같다. 현재 글로벌 아트씬에서 주목받는 해외 아티스트들의 공간은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기욤 카시마는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프랑스 출신의 일러스트 작가이다. 동양적인 외모와 기욤 카시마라는 국적을 예상하기 힘든 이름, 그리고 유쾌한 캐릭터 기반의 작품이 너무나 매력적인 그. 재치 있는 감각으로 대담한 그림, 그래픽 디자인, 제품 또는 애니메이션 등 여러 분야를 아우르는 접근방식을 시도하는 예술가이기도 하다. 베를린과 툴루즈 사이에 근거지를 둔 기욤 카시마의 개인 스튜디오 이름이자 그의 별명인 Funny Fun with Guillaume(FFwG)은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오늘에 집중하는 그의 라이프스타일을 잘 보여주고 있다. 여러 도시를 넘나들며 작업하는 그의 성향을 반영하듯, 그의 작업 또한 다양한 주제를 다양한 매체로 표현하길 좋아했다.

 

 

 

베를린의 베를린, 크로이츠베르크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계절의 베를린으로 향했다. 비행기에서 펼친 베를린 가이드북에서 우연히 발견한 삽화가로 기록된 기욤 카시마의 이름이, 이번 여정에 무언가 더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듯하다. 늦은 저녁 도착한 베를린은 한국과 비슷한 계절이었지만 거리가 어두워 훨씬 더 춥게 느껴졌다. 부슬부슬 내리던 빗방울이 마치 기욤의 화풍과 닮은 듯했다.

 

 

기욤의 화풍과 닮아있던 그날의 날씨

 

 

그렇게 베를린에서의 첫 번째 밤이 지나고, 아침 일찍 기욤 카시마를 만나기 위해 그가 사는 크로이츠베르크로 향한다.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아티스트들의 주된 활동 구역이라고 할 수 있는 크로이츠베르크는 베를린을 축약해놓은 듯한 묘한 매력을 가졌는데, 첫인상은 매력적이라기보다 무질서로 기억되는 곳이었다.

 

베를린, 그리고 크로이츠베르크는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든 곳이다. 모든 것이 너무 다양하고 자유로워 누군가에게는 혼돈과 유쾌하지 못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이러한 모습이 아직 자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그래서 더욱 자유롭고 생생하게 살아있는 도시의 건강한 민낯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

 

 

기욤 집 담벼락의 뽑기, 작동여부는 모름

 

 

 

기욤을 만나기 위해 찾아간 오래된 건물은 투박하게 지난 세월을 온전히 담고 있었고, 널브러진 낙엽과 거리마다 붙어있는 오래된 전단지가 그곳의 정체성을 이야기하는 듯했다. 그와 만나기로 한 시간보다 살짝 여유롭게 도착해 동네를 한 바퀴 둘러보았다. 거리 곳곳의 힙한 레코드샵과 서점, 그리고 그의 집 담벼락 한 쪽에 붙어 있던 뽑기 기계에 눈길이 갔다. 노란색 박스 안에 가득 채워진 아이들 장난감, 덕지덕지 붙어 있는 스티커와 붙였다 뗀 자국들, 알 수 없는 낙서로 뒤덮여 작동하는지 의심스러운 그 기계에 깜박 정신을 팔았다. 언뜻 느껴지는 인기척에 고개를 들어보니 우리를 기다리는 기욤 카시마의 모습이 창문 너머로 어렴풋이 보였다.

 

 

 

무채색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도시’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베를린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도시의 채도가 그리 높은 편은 아니다. 높은 채도에서 오는 일반적인 섹시한 느낌보다는 아마도 긴 세월을 담은 색 바랜 도시와 날 것의 느낌을 뿜어내는 젊은이들의 어우러짐에서 오는 섹시함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기욤 카시마의 첫인상은 베를린 그 자체였다.

 

검정 스웨터와 낡은 청바지를 즐겨 입는 이 아티스트는, 날카로운 인상과 개구쟁이 같은 웃음을 동시에 보이며 인사를 건넸다. 동양인의 외모를 가진 프랑스인으로 영어와 불어를 자연스럽게 구사하는 모습에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든 베를린의 다양성이 투사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가 커피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우리는 그를 위해 준비해 온 원두를 조심스레 꺼냈다. 그가 선물을 받고 살짝 미소 짓는 모습에서 다정한 그의 성격이 보이는 듯했다.

 

 

커피를 좋아하는 그를 위해 빈브라더스 원두를 준비했다

 

 

그의 작업 공간 역시 처음 그에게서 느낀 느낌과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낡은 외관과 다르게 실내는 깨끗하게 정리된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했다. 기욤 카시마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이곳 작업실은 채도를 가진 오브제를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공간의 대부분이 무채색으로 채워져 있었다. 심지어 그가 내어준 진한 블랙커피와 함께 그가 즐기는, 줄기차게 피워대는 회색 담배 연기마저도 이 공간의 일부분인 양.

 

 

담배를 즐긴다

 

 

 

이 공간에서 볼 수 있는 밝은 색감은 그의 작품과 같이 한 쪽 벽면에 살포시 기대어 놓여진 형광등뿐이었다. 겉으로 노출된, 밝게 빛나는 형광등이 무채색의 공간 속에서 자신만의 빛을 뿜어내며 묘한 느낌을 자아냈다.

 

 

 

노출된 형광등이 묘한 느낌을 자아낸다

 

 

 

기욤과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서로에게 가졌던 궁금증을 하나씩 풀어가는 과정에서 그가 보여준 작품들 역시 대부분 흑과 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간혹 색이 보이는 일러스트도 기본 단색만을 활용해 화려하진 않아도 강렬한 느낌이 들었다. 일러스트레이터 중에는 단조로움을 피하는 방편으로 컬러에 힘을 주는 경우가 꽤 많기에 그의 작품이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다. 당연히 취향에 기반한 선택이겠거니 예상하며 유독 흑백 작품이 많은 이유를 묻는 질문에 생각보다 진지한 답변이 돌아왔다.

 

본인 스스로가 아티스트이기도 하지만 완벽한 결과물을 만들어야만 하는 아르티장이기도 하다는 그는 의도를 고스란히 전달하고 싶다고 했다. 창작한 작품을 인쇄할 때 색이 다양한 경우 의도와 다른 색상으로 인쇄되는 경우가 간혹 있는데, 이렇게 제어하지 못하는 요인으로 만족스럽지 않은 결과물이 나오는 것이 싫다는 기욤 카시마. 그는 이러한 이유로 무채색으로 의도를 전달하는 화풍에 집중한다고 답하면서도 이를 굳이 이해시키려 하지 않았다. 그것은 무관심 보다는 존중이라고 느껴졌으며, 기욤은 가벼운 질문에도 본인의 생각을 분명히 밝히고자 했다. 그 성격을 잘 드러내 주듯 즉흥적인 스케치에서도 자신만의 영역을 찾고자 했던 그는 즉흥적인 스케치가 여러 고민을 할 겨를이 없어 좋다고 말했다.

 

 

자신의 작품을 소개하는 기욤

 

 

 

 

부유하는 삶

다른 한쪽 벽면 붙어 있던 철제 선반 아래에는 여러 책과 함께 그의 다양한 아트워크가 쌓여 있었다. 액자에 잘 끼워진 일러스트뿐만 아니라 그의 작품을 형상화한 인형, 엽서와 종이, 노트북과 스피커까지 단순하면서도 복잡한 분위기가 선반에서 뿜어져 나왔다. 이 선반에서 베를린의 감성이 느껴진다면 나만의 착각일까.

 

베를린에는 전 세계의 다양한 문화가 모여 있지만, 완전히 뒤섞이지는 않은 채 각자의 아름다움으로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지금의 베를린은 수많은 색깔이 흩어지고 다시 모이며 자신만의 색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의 시너지가 전 세계의 힙스터를 끌어모으는 힘으로 작용한 것이리라 생각한다. 일본에 뿌리를 둔 프랑스 국적의 아티스트이자 힙스터인 기욤. 장기적인 계획은 의미가 없다며 오늘은 좋지만 내일은 싫을 수도 있고, 반대로 오늘이 싫어도 내일은 좋을 수 있다고 말하는 그의 생각과 삶은 마치 베를린처럼 자유롭고도 복잡해 보였다.

 

선반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자, 그의 아트웍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었다. 마치 피카소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듯 뒤죽박죽이면서도 나름의 입체감을 형성하는 흑백의 선과 점, 도형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일러스트 작품. 그리고 하늘색 배경에 어지러이 그려진 낙서 같은 선들과 중앙이 칸칸이 나뉘면서도 합쳐져 보이는 하나의 캐릭터 그림.

 

 

다양한 아트웍이 쌓여있는 선반

그의 아트웍

 

 

 

오늘의 나에게 집중하는 그의 성향 때문일까? 그의 작품에서, 그리고 대화 속에서 보이는 그는 그 스스로 자신을 속박할 수 있는 모든 목표와 기준, 소속에서 자유롭기를 원하는 것처럼 나타났다. 이러한 그의 라이프스타일은 목표와 도달, 그리고 성공이라는 개념이 공식화되어 있는 이들에겐 신선함 이상의 강한 인상을 주겠지.

 

 

기욤의 작품들

 

 

 

선반에서 시선을 살짝 위로 올리니 바로 위 벽면에 한 흑인 여성의 사진이 걸려 있다. 이 흑인 여성의 사진이 본인에게 많은 영감을 가져다준다며 사진으로 시선을 돌리는 그를 따라, 잠시 그 사진에 시선을 멈췄다. 흑인 여성의 무표정한 모습에서 왠지 모를 슬픔도, 무엇을 생각하는지 모를 살짝 위를 바라보는 시선도 강렬하게 다가왔다. 항상 사진을 바라보며 영감을 얻으려 하고, 자신의 작업을 고민하는 그는 본인의 작업과 표현 방식에 신중을 기하며 스트레스를 받는 전형적인 창작자였다.

 

 

그에게 많은 영감을 준다는 흑인여성의 사진

 

 

 

기욤 카시마의 작업에 대한 인터뷰를 마무리하고, 날이 좋아 템펠호프 공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템펠호프 공원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길에 Korean BBQ라는 글과 함께 빨간 글자의 한국어가 한눈에 들어왔다. 다문화가 잘 정립된 베를린이라지만 지금껏 독일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여러 펍과 알 수 없는 터키식 케밥 가게만 주야장천 봐왔기 때문에 생각보다 큰 한국 음식 가게 규모에 놀라고, 이 먼 타지에서 한국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을 만났다는 것에 잠시 기뻐하며 그와 대화를 이어갔다.

 

 

 

템펠호프공원 가는 길

 

 

 

공기가 가벼워져서인지 대화의 주제 또한 한층 가볍다. 인터뷰라기보다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나누는 대화에 가까운 주제들. 아직 식사 전이라 배가 고픈 일행은 그가 가져온 작은 믹스넛 한 봉지를 나누며 담소를 이어나갔고, 비싼 월세는 전 세계 모든 세입자의 공통된 고민이라는 결론을 낼 수 있었다. 만남이 유쾌했던 만큼 헤어짐이 그다지 무겁지는 않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공원에서 작별 인사를 하며 깨달았다. 처음엔 서로가 많이 다른 모습이지만 결국엔 그도 우리와 같은 고민을 하는 청춘이라는 것을.

 

 

그가 가장 좋아하는 공원에서 작별인사를 나눴다

 

 

 

누구나 책과 영화를 즐기는 시대지만 그림은 여전히 멀고 어렵게만 느껴집니다. 이때 창작자가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지 알고서 작품을 접한다면, 단순히 하나의 이미지로만 접할 때보다 훨씬 더 풍성하게 다가오지 않을까요? 그림 정기구독 서비스 핀즐은 그런 관점에서 매월 한 명의 아티스트를 소개합니다. 현재 글로벌 아트씬에서 주목받는 아티스트를 직접 찾아가 라이프스타일을 취재하고 이를 영상과 매거진으로 기록하며, 선정한 작품을 대형 아트웍으로 제작하고 있습니다. 나와 상관없는 분야라 생각해서 혹은 가격이 부담스러워서 쉽게 즐기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미술을 더 가까이 선물하고픈 마음까지 담았습니다.

 

 

기욤 카시마의 ‘Don`t Touch My Hair’

 

 

기욤 카시마의 <don’t touch="" my="" hair=""></don’t>는 키치한 드로잉과 럭셔리한 색감이 조화를 잘 이루고 있는 작품입니다. 노란색의 배경에 흰색과 검은색으로 그려진, 네 개의 눈을 가진 캐릭터가 마치 내 머리를 건드리지 말라는 듯 고개를 기울여 우리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 작품 속 왠지 신비롭게 느껴지는 네 개의 눈을 가진 캐릭터는 기욤 카시마의 시그니처 캐릭터로, 본인의 자화상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각각의 눈은 희로애락을 나타내며, 감상자의 기분 상태에 따라 작품의 느낌 또한 달라지는 독특한 작품이죠.

 

작품에서 드러난 분위기는 베를린에서 만난 기욤 카시마의 삶을 반영한 듯합니다. 우리들의 기준에서는 다소 불안정한 삶의 방식을 살아가는 그. 장기적인 목표도 안정적인 소속도 없이 하루를 살아가는, 마치 파도 위를 부유하는 듯한 삶이 다수에게 정답으로 여겨지는 모습은 아니지요.

 

하지만 지구상에 존재하는 75억 명의 인간은 각기 다른 가치를 추구하며 다양한 삶의 방식을 이어갑니다. 그렇기에 오늘의 나에게 더욱 집중하는 기욤 카시마의 방식이 무조건 옳다고 말할 수 없지만 틀렸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그의 작품과 삶을 통해 내 생각과 감정에 조금 더 솔직해져 볼 수 있는 용기가 여러분께 전해지기를 바라봅니다.

 

 

 

[연재목차]

(도쿄 편)
2018. 08 소박한 가정집, 반나이 타쿠
2018. 09 가장 일본다운 다다미, 마치야마 코타로
2018. 10 거장의 작업실, 키우치 타츠로

(파리 편)
2018. 11 사랑을 담은, 세브린 아수
2018. 12 아늑한 보금자리, 뱅상 마에
2019. 01 딸과 함께 만든 놀이터, 톰 오구마
2019. 02 힙 & 트렌디, 아카트레 스튜디오

(베를린 편)
2019. 03 영감의 원천 베타니엔 미술관, 미켈라 피키
2019. 04 담배연기 자욱한, 기욤 카시마
2019. 05 베를린예술대학교, 카르멘 레이나
2019. 06 조형과 여백, 클레멘스 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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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즐 진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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