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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nds

2019-03-02

SPECIAL : 아티스트가 머무는 공간 08

08. 영감의 원천 베타니엔 미술관, 미켈라 피키

Original Author 핀즐 진준화 대표(www.pinzle.net)

Adapter&Editor ONDA 소모라 매니저

먼슬리 아트웍 핀즐
웹사이트 :
www.pinzle.net

핀즐은 국내 유일의 그림 정기구독 서비스로,매월 한 명의 아티스트와 작품을 선정하여 세상에 소개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아티스트의 삶과 공간은 어떤 모습일지, 공간을 일구어 가는 많은 분들께 영감을 드리고자 본 콘텐츠를 만들었습니다.

연재하는 내용 및 그림 정기구독 서비스 관련 문의는 카카오톡 플러스친구 ‘핀즐’로 주시면 신속하게 응답하겠습니다.

 

Universe

 

 

존재 자체만으로도 묘한 환상을 갖게 하는 공간이 있다. 때로는 사색에 잠기게 하고 때로는 감탄을 자아내는 작품들이 탄생하는 곳. 공방, 아틀리에, 스튜디오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곳, 바로 예술가의 공간. 그곳에서라면 왠지 시간도 느리게 흐를 것만 같고 사소한 순간조차 영감이 될 것 같다. 현재 글로벌 아트씬에서 주목받는 해외 아티스트들의 공간은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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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출신의 미켈라 피키는 현재 베를린에 기반을 두고 있는 이탈리아의 융복합 예술가이자 ‘나 다운’ 길을 걷는 아티스트다. 법학 및 경제학을 전공했던 독특한 이력이 있다. 전공과 다르게 과감한 선택으로 졸업 후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한 그녀. 이후 홍콩으로 건너가 여러 실험과 탐구 끝에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개발한 것만 봐도, 그녀의 깊은 열정을 알아챌 수 있었다. 나이키, 에어비앤비 등 여러 세계적인 기업들과 함께 협업하고, 거대한 벽화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하며 심지어 TED에서 ‘나 답게 사는 법’에 대해 강연을 한 연사이기도 한 미켈라. 이렇게 끊임없는 실험적 접근을 시도하는 미켈라는 글로벌 아티스트답게 전 세계 곳곳을 누비며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데, 그녀가 선택한 그녀만의 작업 공간이 바로 베를린에 위치한 베타니엔 미술관이었다.

 

베를린이라는 도시가 매력적인 이유는 바로 hip과 classic이 자유롭게 뒤엉켜 있기 때문이 아닐까. 베를린에서도 특히 크로이츠베르크가, 크로이츠베르크에서도 미켈라를 만나기로 한 베타니엔 미술관이 힙한 클래식의 정수를 보여준다고 느꼈다.

 

여러 분야의 전문성을 갖추고 다양한 예술적 분야에서 일하는 그녀답게, 미켈라의 작품에서는 남다른 가능성이 보인다. 눈길을 끄는 화려한 색상은 팝, 초현실주의 및 몽환적인 호랑이 테마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수많은 공공 및 사설 건축물의 벽화 작업을 통해 하나의 공간에 강렬하고 역동적인 경험을 선사하기도 하니까. 베타니엔 미술관을 단순한 미술관이 아닌, 그녀가 작업실로 선택한 공간이라 생각하니 여러 형상들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베타니엔 미술관 전경

베타니엔 미술관의 입구

 

 

베타니엔 미술관 정문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사진으로 접한 모습보다 훨씬 엄중한 인상을 받았다. 미술관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정문 앞. 벽돌로 지어진 엄중한 고성과 낙엽이 깔린 고즈넉한 오솔길에서는 따스하고 잔잔한 향이 풍겨왔다. 그리고 건물 주변 곳곳을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그래피티들. 자유분방하게 그려진 그래피티는 정숙하고 고풍스러운 미술관과 상반되는 모습이지만, 그 풍경에 자연스레 녹아들어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이 클래식한 미술관 내부는 어떤 힙한 작품과 아티스트들로 채워져 있을까.

 

그렇게 어색한 기다림도 잠시, 미술관의 전면 상부에 위치한 시계가 오후 2시를 가리키자 마치 뻐꾸기시계처럼 미켈라가 환히 웃으며 정문을 열고 나왔다.

 

 

피키를 따라 들어선 미술관

 

피키를 만나 그녀의 작업실로 발걸음을 옮기며 들어선 미술관은 클래식하면서도 세련된 모습으로 우리를 반겼다. 그녀는 항상 자신을 표현하고, 작업하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를 매번 찾으려 한다고 했다. 그렇기에 태어났던 이탈리아가 아니라도 그 작업 공간이 좋다면 흔쾌히 국경을 넘어서도 찾아간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선택된 베를린의 베타니엔 미술관은 그녀의 성향을 잘 반영해주듯이 작품들이 각자의 개성을 소유한 채 자유로이 전시되어 있었다.

 

자유로운 전시

 

 

벽 한켠에 그려진 포스터는 왠지 베타니엔과 어울리지 않을 법도 한데, 붉은 색채가 따로 툭 튀어나오지 않게 잘 묻어났다, 낙서인지 작품인지 헷갈릴만한 벽화는 그녀의 작품일까. 배 모양의 설치미술까지 정말 여러 장르의 작품들이 전시된 미술관 내부를 천천히 둘러보며 미켈라의 작업실이 위치한 미술관 지하로 이동했다. 그녀가 추구하는 이러한 환경적 변화와 조건들이 그녀의 작품과 작업의 경계를 넓히는 데에 많은 영향을 끼쳤으리라.

 

설치미술도 전시되어 있다

 

미술관 지하에 도달하자 여러 색깔의 글귀와 그라피티로 도배된 하얀 문 하나가 나타났다. 문에 써진 다양한 단어는 어찌 보면 어린아이가 그린 낙서 같이 보이기도 하고, 유럽의 여느 지하철역이나 다리 밑에 그려진 알 수 없는 의미의 글귀인 듯도 보여 그녀만의 힙한 감성을 나타내주는 듯했다.

 

그 문을 열자 미켈라의 작업 공간이 가득 펼쳐졌다. 빼곡하지만 나름의 규칙을 가지고 정돈된 화구들과 벽면에 붙은 습작과 크로키들, 그동안 그려왔던 다양한 작품들이 한 공간에 자유로우면서도 매끄럽게 위치하는 곳.

 

 

그녀의 작품

 

 

작업실 한 켠에 걸려있는 호랑이 그림이 화려한 색감을 자랑하고 있었다. 호랑이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동물이 또 있을까? 전래동화부터 이런저런 브랜드와 캐릭터, 지도에 구겨져 넣어진 모습까지.

하지만 미켈라 피키가 그려내는 호랑이는 사전적 의미만 동일할 뿐 전혀 다른 존재로 우리의 눈을 파고든다. 무심한 사람의 눈을 하고, 무섭지도 익살스럽지도 않은 표정과 어정쩡한 자세로 그려진 그녀만의 호랑이. 그녀는 호랑이를 무척 좋아하고 또 자신을 표현하는 매개체로 호랑이를 다루고 싶어 했다. 그래서 그녀의 수많은 작품 중 호랑이가 담긴 그림이 마음에 더 와닿았는지도 모른다.

 

 

문 너머에 피키의 작업실이 있다

아티스트 작업실이 위치한 미술관 지하

 

작업실 내부에 걸린 미켈라 피키의 작품들을 오랫동안 들여다보았다. 색의 규칙과 선의 자유가 매끄러운 틀 안에 갇혀 굳게 마감되어 있었다. 흥미로웠다. 위태롭게 폐쇄된 욕망 혹은 어떤 것으로도 침해되지 않을 온전한 욕망이라. 보는 이에 따라 느끼기 나름일 테지만, 대단한 힘의 결정이었다.

 

다른 쪽 벽면, 철창이 붙어있는 창가 아래엔 조그만 화분과 보일러, 그리고 그녀의 책상이 위치했다. 창밖으로는 푸릇푸릇한 녹음이 펼쳐지고, 창 아래 그녀의 책상 위에서는 화려한 색상의 작업물이 만들어진다. 책상에는 감각적인 스탠드와 함께, 세계를 누비는 그녀의 기념품인 것처럼 보이는 여러 장식품이 놓여있었다. 일본에서 가져온 듯한 네코 고양이, 토토로 피규어, 그녀가 사랑하는 호랑이 모형과 동물들까지. 일러스트와 휴대폰, 노트로만 가득 채워지던 책상에서 작업하는 그녀. 힘들면 한 번씩 이 귀여운 장식품들을 보며 잠시 휴식을 취했을까.

 

 

피키의 책상

 

 

책상 옆에 놓인 3단 트레일러 위에 피키의 가장 친한 친구들이 놓여 있다. 피키가 즐겨 그리는 색깔의 물감과 미술도구들은 마치 이 공간의 주인인 것처럼 당당하게 자리 잡고 자신만의 매력을 뽐내고 있었다. 미켈라 피키는 자신의 모든 작업이 모험이라 말했다. 실패란 아티스트에게 가장 흔히 일어나는 일 중의 하나일 뿐이라고 말하는 피키의 말에서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원하던 결과에 근접해 기뻐하는 그녀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그녀를 만나기 전, 그녀의 작품에서 느낀 감상은 트렌디한 컬러를 잘 쓴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녀의 공간이 작품과 비슷하게 여성적일 것으로 추측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베를린에서 만난 미켈라 피키는 누구보다 솔직하고, 에너지 넘치며, 도전하길 즐긴다. 우리가 상상하던 여성적 공간도 아니었다. 그녀에게 여성 아티스트라는 표현은 맞지 않는 퍼즐 조각 같이, 그녀는 그냥 아티스트일 뿐이었다.

 

 

피키의 가장 친한 친구들

낙서일까 작품일까

 

 

베타니엔 미술관에서 인터뷰를 마치고 미켈라가 사는 동네, 미테로 함께 넘어가는 길. 불규칙하게 비가 내리고 그치기를 반복하던 하늘에선 오렌지빛 햇살이 비구름을 쪼개며 쏟아진다. 미테는 독일어로 중심이라는 뜻이다. 이름답게 잘 정비되고 세련된 모습. 가장 좋아하는 동네를 묻는 말에 미켈라는 두말할 것 없이 미테를 얘기했다. 개성 강한 큐레이션 서점, <do you="" read="" me?="">와 수많은 갤러리. 미켈라의 안내를 따라 미테를 거니는 동안 다양한 컬러의 갤러리들이 시선을 잡아끈다. 쇼윈도를 통해 보이는 작품의 탐닉만으로도 훌륭한 미술관에 들어온 듯, 감성적 충만감이 채워진다.</do>

 

미켈라의 집 앞에서 작별인사를 나누며 그녀가 2015년 TED 강연 연사로 말한 내용이 문득 떠올랐다.

“무언가를 표현하기 위해 그림을 그리진 않는다. 나 자신이 평가받기 위해 작업 활동을 하고 싶지 않다. 사람들이 내 작업을 좋아해 주면 기쁘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서 기분이 나쁘거나 하지 않는다. 세상엔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있고 나 또한 세상 모든 아티스트의 작품을 좋아하는 건 아니다. 나 스스로도 설명하기 힘든 내면의 감정과 생각들이 작품에 녹아 있을 뿐이다.”

 

 

미테에서 작별인사를 나눈다

 

 

두려움 없이 주도적으로 행동하는 그녀의 삶이 부럽기도 했다. 나를 움직이는 것도 나 자신이고, 나를 주저하게 만드는 것도 나 자신이다. 욕망엔 두려움이 따르는 법이나, 해보자. 행동하자. 생각만으로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

 

누구나 책과 영화를 즐기는 시대지만 그림은 여전히 멀고 어렵게만 느껴집니다. 이때 창작자가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지 알고서 작품을 접한다면, 단순히 하나의 이미지로만 접할 때보다 훨씬 더 풍성하게 다가오지 않을까요? 그림 정기구독 서비스 핀즐은 그런 관점에서 매월 한 명의 아티스트를 소개합니다. 현재 글로벌 아트씬에서 주목받는 아티스트를 직접 찾아가 라이프스타일을 취재하고 이를 영상과 매거진으로 기록하며, 선정한 작품을 대형 아트웍으로 제작하고 있습니다. 나와 상관없는 분야라 생각해서 혹은 가격이 부담스러워서 쉽게 즐기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미술을 더 가까이 선물하고픈 마음까지 담았습니다.

 

 

미켈라 피키의 ‘Universe’

 

미켈라 피키의 <universe></universe>는 그녀만의 강렬한 색감과 화풍이 고스란히 반영된 작품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우주 같은 까만 색의 응축된 에너지를 칠하는 붓. 그리고 그 붓이 놓여있는 옥색 배경. 이 에너지가 옥색 장막을 걷어내면, 비로소 안에 숨겨진 광활함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몇 번이고 덧칠한 듯 진한 색감과 팝한 디자인의 조화는 시선을 사로잡아 눈을 쉽게 뗄 수 없고, 더욱 기분 좋은 에너지를 선사하죠.

작품에서 느껴지는 분위기처럼 미켈라 피키는 자유분방한 듯하면서도 뜨거운 열정이 넘치는 아티스트입니다. 스스로 한계를 짓지 않고, 시행착오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새로운 영감을 찾아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그녀에게 거대한 벽은 하나의 이젤이 되고, 수많은 청중을 마주한 TED 강연 무대는 즐거운 놀이터가 되었습니다. 그녀의 작품 속 강렬한 에너지는 이 열정이 녹아든 것 아닐까요? 예술도, 인생도 멋지게 즐기는 모험가의 모습이 엿보이는 그녀. 여러분은 이 작품을 통해 어떤 걸 느끼셨나요?

 

 

 

[연재목차]

(도쿄 편)
2018. 08 소박한 가정집, 반나이 타쿠
2018. 09 가장 일본다운 다다미, 마치야마 코타로
2018. 10 거장의 작업실, 키우치 타츠로

(파리 편)
2018. 11 사랑을 담은, 세브린 아수
2018. 12 아늑한 보금자리, 뱅상 마에
2019. 01 딸과 함께 만든 놀이터, 톰 오구마
2019. 02 힙 & 트렌디, 아카트레 스튜디오

(베를린 편)
2019. 03 영감의 원천 베타니엔 미술관, 미켈라 피키
2019. 04 담배연기 자욱한, 기욤 카시마
2019. 05 베를린예술대학교, 카르멘 레이나
2019. 06 조형과 여백, 클레멘스 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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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즐 진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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